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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일본

[일본 근현대사]#15_메이지유신 군제 개혁, 군국주의의 길을 걷다

by 티제이닷컴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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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유럽과 미국의 군제를 견학하던 시기에 때마침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 결과, 약소국이었던 프로이센이 승리하며 프랑스에 영토 할양과 배상금을 요구했다. 비스마르크와 독일 황제는 그들의 영토에서가 아닌,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 건국 기념식을 거행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프로이센 군국주의의 강한 군사력과 군대 조직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정했다. 일본이 따라야 할 군사 체제는 프로이센이다!"

 그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앙 정부가 통솔하는 제국 군대를 창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군제 개편에 영감을 준 독일의 철의 수상 비스마르크
일본 군제에 영향을 끼친 독일 철의 수상 비스마르크

 

일본, 군제 개혁에 바람이 불다

 

 1870년 8월 3일, 유럽과 미국의 군제를 시찰하고 귀국한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사이고 쓰구미치가 메이지 천황에게 시찰 결과를 보고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처음으로 천황을 알현하는 것이었다. 무더운 날씨와 천황을 알현한다는 긴장감 탓에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천황과 1시간 넘게 계속된 이 대담에서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전해진다.

 25일 후,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병부소보로 임명되었다. 그로부터 1년간 그는 근대 군제 개혁의 실권을 장학하고 병부를 관리했으며 그 후 11년 동안 '황군'을 설립해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막부 말기부터 일본은 군대에 근대화 개혁을 실시해 왔었다. 막부는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프랑스 군대를 본떠 보병, 기병, 포병 3군 체제를 구축하기도 했었다.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이후, 신정부는 수많은 번들이 난립하는 구식 군사 체제를 개혁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닥쳤다. 각 번의 군대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각기 다른 나라의 군제를 참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 병부 원수인 오무라 마스지로는 육군 체제는 프랑스식을, 해군 체제는 영국식을 따랐다가 반대파에게 암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메이지 유신 시기에는 천황을 호위하기 위해 사쓰마, 조슈, 도사 3개 번의 군대를 중심으로 천황 근위 부대를 조직, 히가시야마와 사이카이 두 진대(사단)에서 긴키(일본 본섬 중서부 지방)를 경비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폐번치현 이후에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다시 병제를 개혁해 도쿄, 오사카, 진세이(규슈), 도호쿠 4곳에 진대를 설치하고 통일된 군대 조직의 기초적인 형태를 세웠다.

 최신 기술을 통해 근대식 군대로

 일본은 전문가를 육성할 목적으로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를 설립했다. 또 도쿄와 오사카에는 포병 공장을 설립해 군수 공업을 지원했다. 츠키지와 요코스카에는 해군 공장을 건설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앞선 기술의 평로를 도입해 제련 속도 및 품질을 제고하고,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선진 무기 및 기술을 들여와 대포의 품질 역시 크게 향상하였다. 이로써 1880년대 초에는 군수 공장에서 자체 제작한 무라타 연발총과 각종 구경의 대포를 생산해 내는 데도 성공한다. 1875년, 일본은 최초로 자체 제작한 대형 군함 '청휘호'를 건조했다. 얼마 후에는 철골철갑함을 생산하기 시작해 1890년에는 해군이 총 5만 1,000톤 규모의 군함 25척과 어뢰정 10척을 보유하게 되었다.

 일본은 1874년에 육군성 내 참모국을 설치하고, 1878년에는 군정 및 군령이 이원화된 독일식 군제로 개혁한다. 참모본부를 육군성으로부터 독립시켜 군령과 작전 방안을 책임지게 하였으며 육군성은 군사 정책을 담당하게 했다. 별도로 군령의 검열과 집행을 책임지는 감군본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육군성과 참모본부, 감군본부로 이루어진 3대 군사 기관은 모두 천황의 직속 기관이었으며, 천황은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대원수가 되었다. 군부의 3대 기관은 내각에서 독립되어 내각의 간섭을 받지 않았으며 독립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각이 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것과는 반대로 이러한 체제가 확립된 이후에는 오히려 군부가 직접 천황의 명령을 받아 정치에 간섭하고, 독단적으로 전횡을 일삼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이로써 일본은 영토 확장을 위해 주변 국가를 침략하는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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