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101 [러시아사]#42_레닌, 러시아 역사에 등장하다 레닌의 탄생 레닌이라는 이름은 시베리아의 큰 강인 레나강에서 따온 것이었다. 17세에 혁명에 가담했던 이 청년은 27세에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레닌으로 바꾸었다. 19세기의 데카브리스트 이래로 레나강은 차르 통치에 반대하고 러시아 민족의 흥성을 위한 길을 모색하다가 이곳으로 추방당한 혁명가들을 넓은 가슴으로 품어왔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혁명가들은 러시아의 노선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들은 도도하게 흐르는 이 강가에 서서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다. 이 때문에 레나강은 러시아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독특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레나강은 조국의 번영에 대한 민족의 염원과 갈망을 상징했다. 이러한 이유로 레닌은 레나강에서 이름을 따 자신의 이름으로 .. 2024. 2. 14. [러시아사]#41_1차 세계대전과 2월 혁명, 러시아를 뒤흔들다 1913년 러시아의 석탄 생산량과 면화 가공량은 1900년에 비해 각각 121퍼센트와 62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였다. 수출 총액과 국민 소득 역시 각각 112퍼센트와 78.8퍼센트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1인당 식량 생산 역시 최대치를 기록했다. 1914년에 이르자 러시아는 세계 6대 무역 대국, 그리고 세계 4대 공업 대국으로 급부상했다. 1909년에 스톨리핀은 한껏 자랑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20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평화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때 러시아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모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러시아에 그와 같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미 수명이 다된 다른 왕조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역시 스톨리핀의 출현만으로는 잿빛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191.. 2024. 2. 13. [러시아사]#40_피의 일요일 사건, 러시아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다 피의 일요일 사건 1905년, 러시아와 일본이 중국에서 러일전쟁을 한창 벌이고 있을 때였다. 러시아 내에서는 혁명의 조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1월 22일 일요일,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날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15만 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이 노인과 아이들을 대동하고 나와 겨울궁전을 향해 평화 행진을 시작했다. 그들은 청원서와 니콜라이 2세(재위 1895-1917)의 초상화를 들고 동방정교의 찬송가를 부르며 국민 대표제, 8시간 노동권, 의무 교육, 임금 인상, 작업 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손에 무기 하나 쥐지 않은 그들을 기다린 것은 황제의 웃는 얼굴이 아니라 총성과 차디찬 말발굽 소리뿐이었다. 경찰과 군대는 이 평화적 행진에 발포를 시작했고, 그날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는 노동자의 피로 .. 2024. 2. 12. [러시아사]#39_알렉산드르 2세 암살과 레닌의 탄생 알렉산드르 2세 암살 농노를 해방한 알렉산드르 2세는 '해방 황제'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전제 군주였다. 농노를 해방한 것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의 진심은 독일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와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황관은 내게 권력의 달콤함을 주었소. 이 황관을 잃는 것은 나의 국민과 민족의 재난을 의미하는 거요." 상황이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생각한 그는 더 이상의 개혁을 거부했다. 그는 막 싹트고 있는 악의 유혹에서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유혹이 언젠가는 사회의 재난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내적으로는 한발 더 나아간 개혁을 원하는 이들을 최고 치안위원회를 통해 공격함으로써 유혈 진입했으며, 대외.. 2024. 2. 11.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