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101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왕자이자 그리스 기사단장이었던 엔리케 포르투갈이 최초의 해양 탐험 국가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처음 항해를 국가 차원에서 계획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켰다. 따라서 포르투갈의 항해 대발견은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의 200여 년 항해 노하우는 철저한 계획과 체계 아래 조직적으로 재정비되어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포르투갈의 아프리카(세우타) 점령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1415년 세우타 점령을 포르투갈 해외 영토 확장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북서 아프리카의 도시 세우타는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가 이끄는 군대에 함락당했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으로부터 세우타를 빼앗아 주앙 1세의 위엄을 드높이고 더.. 2024. 5. 4. [러시아사]#58_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1943년 2월 2일, 200여 일 동안 꿋꿋하게 버틴 소련의 적군은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소련에서의 전쟁은 물론 세계대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45년 5월 1일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승전고가 울린 날이었다. 이날 예고로프 중사와 칸타리아 중사는 독일의 제국의회 의사당 꼭대기에 붉은 깃발을 꽂았다. 그 하루 전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나치 정권은 와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7일 후 독일은 소련의 주코프 장군에게 투항을 알려왔다. 독일이 패망한 그해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들은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는 대국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회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세 개 국가가 전후 처리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이는 .. 2024. 3. 9. [러시아사]#55_대공황 이후 몰락한 자본주의 국가와 추월하는 소련 세계 대공황으로 붕괴한 자유주의 진영과 대비되는 소련의 상황 1930년대 초반,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은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붕괴하였을 때, 사회주의 노선인 소련은 그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덕분인지 소련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서방 국가가 수백 년에 걸쳐 완성했던 공업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 뒤에는 그늘진 대가가 있었다. 빠른 발전에 가려진 문제가 심각했다. 소련은 농업의 정상적인 발전을 무시한 채 중공업과 군수 산업의 성장만을 도모했기에 경제 발전의 불균형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포기해야만 했다. 모든 경제생활을 통제한 국가가 시장 조절 작용을 무시한 탓에 나라는 강해졌지만 국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곤궁했다. 이처럼 제때 해결되지 못한.. 2024. 3. 8. [러시아사]#52_스탈린의 등장, 소련 고속 공업화의 길을 걷다 소련 공업화 노선을 취하다 레닌의 빈자리를 스탈린이 채웠다. 스탈린이 물려받은 소련은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1920년대는 자본주의 황금시대였다. 서양의 각국은 제1차 세계대전 후유증에서 벗어났고, 주요 국가의 공업 생산량은 전쟁 전의 150퍼센트를 웃돌았다. 일부 서양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로 인해 빈곤이 사라졌으며 서양 세계는 이미 영원한 번영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당시만 해도 곧 다가올 경제 위기를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눈앞의 번영으로 자신감이 가득했던 서양 세계는 여전히 소련 경제에 대한 봉쇄 정책을 풀지 않았다. 1927년, 영국은 소련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1921년 서명한 영소 무역협정을 무효로 했다. 한편 영국의 외무장관 체임벌린은 6개국 외무장관 회.. 2024. 3. 6.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