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101 [포르투갈] 콜럼버스와 포르투갈의 주앙 2세 신대륙 발견과 동방 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포르투갈의 동방 항로 개척은 유럽과 세계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항해와 개척으로 인해 사람들이 온전한 세계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진정한 세계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위대한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세계 모든 대륙이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이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역과 문화 교류도 증가했다.주앙 2세와 인도 항로 콜럼버스의 1차 항해 성공 소식을 가장 처음 접한 왕은 스페인의 여왕과 국왕이 아니었다. 처음 콜럼버스의 요구를 거절했던 포르투갈의 주앙 2세였다. 귀항 중이던 콜럼버스는 서풍 무역대에서 태풍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포르투갈 항구에 기착해야 했.. 2024. 5. 10.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새로운 향로 무역 루트를 찾으러 동방의 향료가 유럽에 이르는 길 15세기 유럽의 경제 중심지는 지중해였다. 베니스, 제노바, 피렌체의 크고 작은 선박이 지중해와 북해를 넘나들었다. 이들은 동방에서 가져온 각종 사치품을 유럽 각지로 운반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423년 베니스 총독이 자랑한 업적을 살펴보면 당시 베니스는 소형 선박 3,000척, 중형 선박 300척, 대형 전함 45척에 선원 3만 6,000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매년 무역 거래액이 1,000만 두카토에 달했는데, 당시 교황의 시종이 1년에 30 두카토를 받았다고 하니 그 거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베니스 상인을 질투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향료 무역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향료의 가치는 황금에 견줄 만했다. 유럽인들은 고기를 요리하거.. 2024. 5. 7.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엔리케 왕자, 대양으로 눈을 돌리다 엔리케 왕자의 포르투갈 해양 탐험 12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유럽 변방의 작은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의 단일민족국가였다. 당시 유럽 국가에는 '민족의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했지만 유독 포르투갈은 강한 민족의식을 보여줬다. 14세기말 국경 분쟁에서 포르투갈은 예상과 달리 강대국 스페인을 격파했고, 이후 양국은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당시 포르투갈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물리친 주인공은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1세였다. 훗날 그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의 누이와 결혼해 5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 중 4명이 역사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특히 첫째 아들 두아르테는 포르투갈 왕위를 물려받았고, 셋째 아들 엔리케는 포르투갈 해양 패권 사업의 기초를 다져 항해 대발견의 시조가 되었다. 1415.. 2024. 5. 6.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포르투갈, 틀에 갇힌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유럽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이슬람 문명과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이들은 유럽 외에도 아프리카 북부 및 아시아에 이르는 무역 항로에 대한 정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포르투갈이 항해 대발견에 나서게 된 주요 요인이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비유럽 문명, 특히 아라비아의 과학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라비아 과학은 특히 천문학과 수리학에서 유럽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럽을 벗어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지.. 2024. 5. 5.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