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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233

[러시아사]#48_크론시타트 반란과 신경제 정책 1920년, 볼셰비키 정권이 백군을 물리침으로써 러시아의 내전은 종결됐다. 전쟁이 끝나자 러시아인들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화롭던 일상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견디기 힘든 시련인 것처럼 전쟁에서 다시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전쟁이 일어나던 순간부터 모든 것은 전쟁 위주로 돌아갔고 승리 후에는 다음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이렇게 굳어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발전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크론시타트 반란 크론시타트 반란 내전이 끝난 뒤 1921년 3월 크론시타트 해군 기지에서 해병들이 일으킨 반정부 반란 사건이다. 발.. 2024. 3. 2.
[러시아사]#47_전시 공산주의와 러시아 내전(적백내전)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 처칠은 영국의 육군 장관에 재임할 당시 볼셰비키를 요람에서 죽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한 경제학자인 케인스는 러시아의 터진 곳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무력뿐이라고 주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인 소비에트 연방은 승자의 대우를 받기는커녕 새로운 전쟁에 휘말려야 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러시아를 공격해 왔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의 국가는 러시아에 무장간섭을 시작했고, 콜차크, 데니킨, 유데니치를 중심으로 하는 백군(반 볼셰비키군)은 신정권을 공격해 왔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전역은 불길과 연기로 뒤덮였으며, 적군이 많을 때는 동시에 24곳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 비해 러시아의.. 2024. 3. 2.
[러시아사]#46_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의 행보, 레닌과 마르크스 주의 10월 혁명 이후의 행보 러시아의 민족들이 10월 혁명 이후 5년이나 고난의 투쟁을 하며 선진 공업 국가의 침략과 간섭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결국 승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것은 평등과 정의, 그리고 진보적인 사회 제도에 대한 갈망이었다. 10월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의 정권은 소비에트로, 평화와 토지는 국민들에게로 돌아갔다. 혁명 이틀째, 소비에트는 첫 번째 법령인 평화 법령을 공포했다. 이 법령을 통해 교전 중인 국가에 평화 협정을 제안하면서 영토 할양과 배상을 하지 않는 방안을 함께 제안했다. 두 번째로 공포한 것은 토지에 관한 법령이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토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만족하기 위해 노동량과 소비량에 맞추어 노동자에게 토지를 지급했다. 러시아.. 2024. 3. 2.
[러시아사]#45_10월 혁명과 레닌,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다 레닌의 혁명 준비,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를 설득하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데도 중앙위원회가 여전히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9월 29일, 레닌은 다시 한번 중앙위원회에 제안하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혁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자신이 중앙위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레닌이 여태껏 한 번도 이러한 강경한 입장을 보인 적이 없었기에 레닌의 사직 의향을 담은 편지는 꽤 강력한 파급력을 보였다. 훗날 부하린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레닌의 편지가 너무나도 강경했던 나머지 우리는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누구도 그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의회의 해산을 명령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혁명의 성공을 의심했다. 이 때문.. 2024.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