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52 [영국]#3_1066년, 영국 역사의 변곡점 '왕위쟁탈전' 1066년, 영국의 왕위쟁탈전 기원후 1000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는 통일을 이루고 덴마크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할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11세기 전반기에 잉글랜드의 왕위는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은 기회만 되면 왕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각축을 벌였다. 독실한 그리스도교였던 참회왕 에드워드(1003?~1066)는 이런 정치판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애착보다 경건한 신앙심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세속 왕국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임종 때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도 하고, 그 훨씬 전에는 자신의 먼 친척인 노르.. 2024. 6. 14. [영국]#2_브리타니아-로마 제국의 속주 브리타니아,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다 기원후 43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BC 10 ~ AD 54)는 다시 브리튼을 정복하여 로마 제국의 속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원전 54년에 카이사르의 군대가 브리튼 섬을 떠난 후, 거의 1세기가 다 되도록 로마는 내분으로 인해 브리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근 30년간이나 정복 전쟁으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 황제와 군인들은 오랫동안 참아온 정복욕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다. 이때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브리튼이었다. '브리튼 정복자'야말로 정복욕의 물꼬를 터줄 최적의 명분이었다. 그는 위대한 카이사르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로마 군대의 사명이라 여기고 브리튼 원정을 결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43년, 로마 군단의.. 2024. 6. 13. [영국]#1_카이사르-브리튼 전기 카이사르-브리튼 전기 고대 로마 공화국의 통치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는 '갈리아 전기'에서 브리튼 원주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브리튼족은 모두 대청이라는 풀을 이용해 온몸을 물들이고, 얼굴색은 특히 파랗게 보이도록 했다. 그래서 전투 중에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또 그들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머리와 콧수염을 제외한 온몸의 털을 밀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십여 명의 남자들이 한 아내를 공유하거나 형제간 또는 부자지간에 공유하는 일도 흔하다. 만약 이들이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녀가 처녀였을 때 가장 처음 접한 남자의 아이로 간주한다."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로마인의 눈에는 브리튼족이 야만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원정하던 중에 이 브리튼.. 2024. 6. 12. [영국]#0_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유산 유럽 지도를 펼쳐보면 서유럽 대륙 건너편에 자리한 두 개의 큰 섬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그레이트브리튼이고,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다. 그레이트브리튼 섬 전체와 아일랜드 북부 및 주변 섬들을 합친 것이 바로 '연합왕국(United Kingdom)', 즉 우리가 흔히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이다. 북대서양의 험하고 거친 파도 가운데 떠 있는 섬나라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면적은 약 24만 제곱킬로미터이며, 어떤 지방이든 해안선까지의 거리가 12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다. 17세기말에 600만 명 정도이던 인구는 오늘날에는 대략 6,800만 명 정도이다. 지도나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가 어떻게 과거 .. 2024. 6. 11.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