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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5_윌리엄 1세와 솔즈베리 서약 솔즈베리 서약 잉글랜드 남부 윌트셔에 자리한 소도시 솔즈베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고도이다. 또한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가 발견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도시이기도 하다. 스톤헨지는 수십 톤에 달하는 무겁고 거대한 돌기둥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이 유적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누가 어떤 방법으로 건조했는지, 그리고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인해 스톤헨지는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신비한 후광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 역사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면 이 소도시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스톤헨지 못지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1086년 8월 1일, 정복왕 윌리엄은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보유한 모든 봉건 귀족을 솔즈베.. 2024. 6. 17.
[영국]#4_정복왕 윌리엄 1세 윌리엄, 잉글랜드의 왕이 되다 영국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면서 배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는 오히려 "잉글랜드를 이 손안에 넣었다."라고 큰소리치며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잉글랜드 정복에 얼마나 들뜨고 집착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자들은 보름 동안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이윽고 윌리엄이 이끄는 5,000명의 정예부대와 헤이스팅스의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한 7,000명의 해럴드 측 군사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해럴드가 조직한 방어진이 마치 견고한 석벽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윌리엄의 군대는 하루 종일 화살과 기병대의 공격을 번갈아 퍼붓고도 .. 2024. 6. 16.
[영국]#3_1066년, 영국 역사의 변곡점 '왕위쟁탈전' 1066년, 영국의 왕위쟁탈전 기원후 1000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는 통일을 이루고 덴마크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할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11세기 전반기에 잉글랜드의 왕위는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은 기회만 되면 왕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각축을 벌였다. 독실한 그리스도교였던 참회왕 에드워드(1003?~1066)는 이런 정치판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애착보다 경건한 신앙심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세속 왕국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임종 때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도 하고, 그 훨씬 전에는 자신의 먼 친척인 노르.. 2024. 6. 14.
[영국]#2_브리타니아-로마 제국의 속주 브리타니아,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다 기원후 43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BC 10 ~ AD 54)는 다시 브리튼을 정복하여 로마 제국의 속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원전 54년에 카이사르의 군대가 브리튼 섬을 떠난 후, 거의 1세기가 다 되도록 로마는 내분으로 인해 브리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근 30년간이나 정복 전쟁으로 공을 세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 황제와 군인들은 오랫동안 참아온 정복욕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다. 이때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브리튼이었다. '브리튼 정복자'야말로 정복욕의 물꼬를 터줄 최적의 명분이었다. 그는 위대한 카이사르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로마 군대의 사명이라 여기고 브리튼 원정을 결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43년, 로마 군단의.. 2024.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