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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14_튜더 왕조의 왕권 강화 튜더 왕조의 왕권 강화 웨일스를 정복한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의 수렁에 빠져 10여 년을 허우적대다가 결국 프랑스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후계자들은 장장 100년이 넘게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는,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을 남겼다. 1453년에 백년전쟁이 실패로 끝나고, 2년 만에 잉글랜드는 양대 귀족 가문인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간의 내전에 휩싸였다. 이는 '장미전쟁'이라는 낭만적인 이름 때문에 자칫 여자나 애정에 얽힌 전쟁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장미 문장을 사용하는 두 가문이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30년에 걸친 내전 동안 잉글랜드의 왕관은 귀족들의 단두대라고 할 만큼 많은 희생을 치르며 네 명의 머리 위를 전전하게 되었다. 결국.. 2024. 6. 26.
[영국]#13_에드워드 1세와 스코틀랜드, 영국 의회의 발전 과정 에드워드 1세와 스코틀랜드 1296년,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벌인 후 스코틀랜드의 보물인 대관식용 스콘석을 빼앗아 왔다. '리아 파르'라고 불리는 이 성스러운 돌은 1998년에 이르러서야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로 반환되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를 잉글랜드에 복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에드워드 1세에 대한 스코틀랜드인의 원한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뿌리가 깊다. 이는 1995년에 나온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에드워드 1세는 부왕인 헨리 3세가 겪었던 수모를 보면서 귀족들이야말로 왕권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는 시몽이 왕권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의회를 오히려 귀족 세력을 제한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 귀족이 장악하.. 2024. 6. 25.
[영국]#12_영국 의회의 탄생 과정 영국 의회의 탄생 오늘날 영국의 소도시 옥스퍼드는 옥스퍼드 대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매년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지만, 이 작은 소도시가 영국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258년, 헨리 3세는 시칠리아 원정에 필요한 군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옥스퍼드에서 대규모 의회를 소집했다. 하지만 헨리 3세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귀족들은 이 기회를 틈타 군사를 일으키기로 했다. 이윽고 헨리 3세의 매부였던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가 무장한 7명의 귀족을 대동하고 궁정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헨리 3세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대신, 왕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된 '옥스퍼드 조례'에 조인할 것을 요구했다. 국정개혁안인 이 '옥스퍼드 조례'에 .. 2024. 6. 24.
[영국]#11_<마그나 카르타>의 이모저모(2) '마그나 카르타'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치가 핵심적이다.첫째, 국왕이 국민에게서 돈을 얻어내는 통로를 차단한다. 즉, 국가가 함부로 돈을 징수하지 못하도록 제한 장치를 마련했다.둘째, 국왕의 판결은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사법적 형평성을 주장했다.셋째, 지방 관리 및 제후 세력들의 압제를 없애고자 했다.'마그나 카르타'의 판본 '마그나 카르타'에는 총 4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1215년에 작성된 문건으로 존 왕과의 타협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존 왕은 이 협의를 무시하고 '마그나 카르타'의 무효를 주장하며 또다시 내란을 야기했다. 1216년 존 왕이 죽고 겨우 9세밖에 되지 않은 존 왕의 아들인 헨리 3세가 즉위한 뒤 새로운 '마그나 카르타'를 반포하게 된다. 그러고.. 2024.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