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51 [영국]#26_찰스 1세, 영국내전의 전초전 영국, 내전의 바람이 불다 왕권의 본질에 반대하는 것은 곧 전제정치를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국가에서 정치적 기반이 되는 필수 요소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은 수업료를 내고 고도의 정치적 실험을 한 셈이었다. 햄던 사건으로 국왕의 권위가 실추된 데다 고갈된 재정을 채울 길마저 막막해진 상태에서 찰스 1세는 또다시 전쟁에 휘말렸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만약 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찰스 1세는 그의 아버지처럼 모든 책임을 후계자에게 물려준 채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전쟁은 바로 찰스 자신의 어리석음이 발발한 것이었다. 찰스 1세는 당시 청교도가 장악하고 있던 의회와 갈등하는 상황에서 장.. 2024. 7. 12. [영국]#25_찰스 1세와 영국의 권리 청원 찰스 1세 vs 의회, '권리청원' 찰스 1세는 왕권에 도전하는 의회를 해산시켰다. 그러고는 불법으로 상인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고, 젠트리에게는 강제로 대출을 받게 하여 국채를 모집했다. 이에 의회의 반대파는 영세민의 조세저항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이렇게 왕권과 민권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영국 왕조 사상 가장 격렬한 비극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주인공인 찰스 1세는 스스로 위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1628년, 조세저항으로 수세에 몰린 데다 재정까지 고갈되자 찰스 1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의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하원은 의회가 소집되자마자 찰스의 이런 전횡을 맹렬히 비난하며 특단의 조처를 한다. 바로 국왕을 상대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청원'을 제출한 .. 2024. 7. 11. [영국]#24_찰스 1세와 의회의 대립 찰스 1세, 왕위에 오르다 1625년, 찰스 1세는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젊은 국왕은 부왕의 명석함보다는 오히려 '왕권신수설'을 제창했던 부왕의 고집을 물려받았다. 그는 약간의 말더듬이에다가 매사 우유부단했지만, 왕권신수설을 통치방침으로 삼으면서 독단적인 군왕이 되었다. 찰스 1세가 '국왕의 권력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정치에 반영하면서부터 그와 잉글랜드는 일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혼란은 찰스 1세가 처형된 후에도 몇십 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영국은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으며, 이 나라가 역사의 파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을지는 국왕의 능력과 지도력에 달려 있었다. 결국 이 범선의 선장인 찰스 국왕이 국가의 운명을 .. 2024. 7. 9. [영국]#23_영국의 동인도회사 동인도회사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해상에서의 약탈을 계기로 설립되었다. 1587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명을 받은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영국 해군을 이끌고 스페인 함대를 습격했다. 해전을 벌이던 중 그는 스페인 국왕 소속 상선인 '산 펠리페 나포했다. 바로 그 배 안에서 동인도 무역에 관한 비밀문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이 문건들이 1600년에 런던 상인들이 동인도 회사를 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해 엘리자베스 여왕은 동인도회사에 특허장을 발부하여 이후 15년 동안 동방무역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1608년,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에 상관(주로 외국인 경영하는 규모가 큰 상점)의 설치를 추진했다. 당시에는 무력으로 억누를 여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주로 경제적인 수단을 이.. 2024. 7. 8.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