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51 [영국]#22_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황금기 엘리자베스 여왕은 재위 중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영국 역사상에서도 가장 민심을 사로잡은 통치자로 꼽힌다. 그녀는 오랜 재위 동안 한결같이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신교도를 지켜주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해상권 보호에도 적극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대항하는 것을 지원함으로써 그 나라 국민의 자유까지 지켜준 셈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권위적인 군주였지만, 폭군도 전제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공인된 법률과 상식에 따라 나라를 통치했다. 여왕은 의회를 자주 열었으며, 말년에는 매년 소집했다. 엘리자베스는 대다수 사람,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사람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하기도 .. 2024. 7. 7. [영국]#21_영국-스페인 전쟁의 이모저모(발달과정, 정치 및 경제적 효과, 종교적 의의) 영국-스페인 전쟁의 발단과 전개 전쟁이 발발한 것은 바로 신교 국가인 영국이 스페인의 제국 패권주의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국인은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대항해 싸우는 데 지원군을 보내 힘을 보탰다. 이에 분노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영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영국해협을 횡단할 연합군을 대륙에 대기시킨 상태에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함대를 파견했다. 1588년 여름, 무적함대는 위용을 자랑하며 영국을 향해 출발했다. 펠리페 2세는 당연히 스페인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예상이 빗나가버렸다. 영국 해군은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아주 날렵하고 기동력이 뛰어났다. 당시 최고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순식간에 와해하여 북해로 쫓겨갔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던 육.. 2024. 7. 6. [영국]#20_영국-스페인 전쟁, 무적함대를 격파하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해적 활동과 노예무역 등 새로운 사업에 왕실의 힘을 실어 줌으로써 당시 세계 최고의 식민제국이었던 스페인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해상 장악력에 있어 영국 해적이 스페인 해군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해상에서의 패권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던 중, 1588년 마침내 양국 간에 일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영국-스페인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1587년에 가톨릭교도인 메리 스튜어트가 잉글랜드에서 처형당한 사건 때문이었다. 메리 여왕의 죽음이 양국 간의 오랜 종교적 갈등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종교적 동기로 잉글랜드 침공을 결정했지만, 실상은 유럽 대륙과 해외 식민지에서 스페인에 거세게 도전해 오는 잉글랜드를 격퇴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 2024. 7. 5. [영국]#19_국가가 공인한 해적들, 드레이크와 호킨스 영국의 해양 탐험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초기에 유럽 대륙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항해가들이 탐험에 성공해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새로운 상업시대에는 해로를 개척하는 것이 육로를 개척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섬나라 민족의 특성상 영국인은 이러한 이치를 다른 민족보다 먼저 터득하고 있었다. 영국은 어느 곳에서든 해안선까지의 거리가 12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다. 영국이 갖고 있는 이 지정학적인 장점이 효력을 발휘할 역사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영국의 해상무역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이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여왕은 상인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무역회사를 설립하게 하고 직접 자본금을 투자했다.. 2024. 7. 4.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