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51 [스페인] 스페인 제국의 몰락 스페인 제국의 몰락 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된 은은 스페인에 사치성 소비를 조장했으며, 인도 무역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스페인으로 돌아온 후 세비야에서 관직을 사고 토지와 호화로운 주택을 사들였다. 이들은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부동산과 토지에 투자해 아메리카 무역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 카리브제도 사탕수수 사업과 진주 채취 사업 등에 투자했다. 당시 세비야에는 특히 은그릇 제조업이 발달해 은 수공업자의 지위가 약재상인과 대등할 정도였다. 스페인 내에 남겨진 은은 대부분 은기 제작에 이용되었다. 네덜란드의 스페인 부대 총사령관 알바 공작이 1582년 죽을 당시 그의 집에 은접시 600개와 은쟁반 800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스페인에서는 그가 청렴결백한 관리로 알려져 있었다. 1970년대 네덜란드.. 2024. 6. 9.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죽음과 가난해지는 스페인 펠리페 2세 영면하다 펠리페 2세도 나이가 들자 궁전을 산책할 때 늘 그가 총애하던 에우헤니오에게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었다. 펠리페 2세는 여전히 성실하고 엄격했지만 때때로 그를 괴롭히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오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596년 엘에스코리알 궁전에 매우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 퍼졌다. 늙은 왕 펠리페 2세의 병이 또다시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이럴 때면 그는 항상 궁전 안에 있는 가족묘로 가곤 했다. 대리석 조각상 아래 그의 아버지 카를 5세가 묻혀 있고, 그 옆에는 그의 어머니이자 포르투갈 공주인 이사벨이 잠들어 있었다. 또한 그의 세 부인도 이곳에 잠들어 있었으며 나머지 한 명인 메리 튜더는 이미 30년 전 런던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펠리페 2세는.. 2024. 6. 8. [스페인]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몰 스페인의 무적함대 1588년 초, 리스본에서 영국 침공을 준비 중이던 스페인 함대 지휘관 산타크루스 후작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페인 무적함대는 이미 리스본에 집결해 있는 상태였다.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30여 척의 스페인 함대가 모여 있는 리스본 항구의 당시 전경은 수많은 돛대가 마치 밀림처럼 보였고, 병사들과 선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항구에는 군수 물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펠리페 2세는 시도니아를 함대 총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시도니아는 해전 경험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그가 총지휘관으로 임명되자 많은 사람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시도니아 역시 장군이었고, 병사들은 그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 함대의 계획을 이미 .. 2024. 6. 7. [스페인]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영국과 제해권을 둔 대립 영국 왕실이 지원한 해적, 드레이크의 등장 스페인이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영국은 스페인의 봉쇄 조치로 네덜란드와의 무역에 타격을 입었다. 1572년 안트베르펜 이남의 하류길이 막히자 영국의 양모와 방직품 수출이 어려워졌다. 지브롤터 해협에서도 스페인 함대에 가로막히자 영국 상인들과 항해사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했다. 바로 이때, 호킨스, 드레이크와 같은 영국 해군 역사상 유명한 명장이 등장했다. 호킨스는 1568년 3차 아메리카 탐험 도중 배가 파손되자 잠시 멕시코에 정박했다. 그러나 호킨스는 이곳에서 스페인 총독에게 습격받아 재물을 약탈당하고 많은 영국 선원이 죽임을 당했다. 호킨스는 이때부터 스페인에 원한을 품게 되었다. 몇 년 후 호킨스는 드레이크를 파견해 스페인의 카리브해 식민지를 습.. 2024. 6. 6.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