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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117

[영국]#22_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황금기 엘리자베스 여왕은 재위 중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영국 역사상에서도 가장 민심을 사로잡은 통치자로 꼽힌다. 그녀는 오랜 재위 동안 한결같이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했다.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신교도를 지켜주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해상권 보호에도 적극적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네덜란드가 스페인에 대항하는 것을 지원함으로써 그 나라 국민의 자유까지 지켜준 셈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권위적인 군주였지만, 폭군도 전제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공인된 법률과 상식에 따라 나라를 통치했다. 여왕은 의회를 자주 열었으며, 말년에는 매년 소집했다. 엘리자베스는 대다수 사람,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사람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하기도 .. 2024. 7. 7.
[영국]#11_<마그나 카르타>의 이모저모(2) '마그나 카르타'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치가 핵심적이다.첫째, 국왕이 국민에게서 돈을 얻어내는 통로를 차단한다. 즉, 국가가 함부로 돈을 징수하지 못하도록 제한 장치를 마련했다.둘째, 국왕의 판결은 공평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사법적 형평성을 주장했다.셋째, 지방 관리 및 제후 세력들의 압제를 없애고자 했다.'마그나 카르타'의 판본 '마그나 카르타'에는 총 4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1215년에 작성된 문건으로 존 왕과의 타협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존 왕은 이 협의를 무시하고 '마그나 카르타'의 무효를 주장하며 또다시 내란을 야기했다. 1216년 존 왕이 죽고 겨우 9세밖에 되지 않은 존 왕의 아들인 헨리 3세가 즉위한 뒤 새로운 '마그나 카르타'를 반포하게 된다. 그러고.. 2024. 6. 23.
[영국]#10_존 왕의 죽음과 <마그나 카르타>의 이모저모(1) 존 왕의 최후 존 왕은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할 때만 해도 이를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시간을 벌어보려는 속셈으로 타협에 응했다. 존 왕은 재빨리 교황의 지지를 얻어 '마그나 카르타'가 불법임을 선포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내란을 일으켰다. 존 왕은 이번에도 외국 용병을 고용하여 왕궁을 지켰지만, 민심을 잃어버린 왕에게 승산은 없었다. 1216년 5월, 반란 세력은 런던에 진입했고, 누구도 국왕 편에 서는 이가 없었다. 그해 10월 18일, 막다른 길에 몰린 존 왕은 결국 병사하고 말았다. 존 왕의 일생이 실패와 좌절로 점철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은 왕권을 지키기 위한 그의 신념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존 왕은 결코 '마.. 2024. 6. 22.
[영국]#9_영국 정치의 정체성을 확립한 <마그나 카르타> 마그나 카르타, 영국 정치의 정체성을 잡다 1215년 6월 15일, 템스강변의 러니미드 초원에서 존 왕과 귀족 대표 간에 담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여기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존 왕이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문서에 조인한 것이다. 귀족들이 랭턴 대주교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이 문서에 대해 존 왕은 불만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결국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집행인 자격의 남작 25명과 함께 공동으로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 문서가 바로 우리에게 '대헌장'으로 알려진 '마그나 카르타'이다. 마그나 카르타 자체에는 새로운 요구사항은 없었다. 다만 윌리엄 1세 때부터 200여 년에 걸쳐 불문율로 내려온 국왕과 귀족들 간의 계약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한 최초의 법률문서였.. 2024.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