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사117

[스페인, 포르투갈] 두 개의 나라, 하나의 왕국 스페인 펠리페 2세 vs 포르투갈 안토니오, 왕위 다툼 1579년에 열린 의회에서는 교회, 귀족, 평민 대표 10명이 모여 왕위 계승 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이 의회에서 결론을 내기 전에 엔리케 국왕이 먼저 죽었다. 엔리케는 누구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5명의 총독이 모여 임시로 대리 통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이 이미 펠리페 2세에게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때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경 지역에서는 스페인 군대가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무력으로 침입했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경쟁자가 성급히 행동을 개시했기 때문에 펠리페 2세도 서둘러 군대를 움직였다. 클라투 수도원 원장 안토니오는.. 2024. 6. 4.
[포르투갈] 포르투갈 쇠락하다: 국내 빈부격차의 악순환 포르투갈의 추락 포르투갈이 다른 유럽 국가의 제품으로 동방 무역을 해온 결과로 영국, 네덜란드 등 기타 유럽 국가들은 상공업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포르투갈이 안트베르펜에서 공산품을 대량 구매하면서 유럽 공산품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또한 향료 무역으로 큰돈을 번 포르투갈의 부자들은 생활 수준이 높아지자 계속해서 온갖 사치품을 사들였다. 포르투갈 부자들은 무기에서부터 종이, 가구, 예술품, 양탄자, 식품, 말, 수레, 선박, 화려한 실내 장식을 위한 타일, 서적, 모피, 향수 등 없는 것 없이 다 갖추어 놓고 살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국내 공업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향료 무역을 독점한 100년 동안 포르투갈의 공업 생산능력은 13세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포르투.. 2024. 6. 1.
[스페인] 펠리페 2세, 스페인 국왕이 되다 펠리페 2세(재위 1556-1598)의 제국은 카를 5세의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펠리페 2세 때부터 스페인풍 정치가 이루어졌고 황제 주변 측근도 모두 스페인인이었다. 펠리페 2세는 국왕으로서 매우 검소하고 시간을 준수하는 등 규범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 처리에 빈틈이 없었기에 몰인정한 면모도 보였다.  국왕의 측근들은 스페인의 이익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고, 스페인의 왕들은 대대로 펠리페 2세를 높이 칭송하고 존경했다. 그는 집권한 20여 년간 언제나 신중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정열적이고도 치밀한 성정 때문인지 그의 통치 기간 중 스페인 국력은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펠리페 2세의 지중해 155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유스테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2024. 5. 24.
[스페인] 마젤란,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하다 고요한 바다 태평양 카를 5세 시기, 스페인에 가장 큰 영예를 가져다준 사람은 바로 마젤란(1480-1521)이다. 그는 스페인을 위해 향료제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고, 인류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심어주었다. 마젤란은 5척의 함대로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실현했다. 1520년 마젤란 함대는 버진곶을 경유 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통로 마젤란 해협에 진입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38일 동안 마젤란 함대는 작은 섬과 해구 사이를 항해한다. 다시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운 좋게 북동 무역풍을 만났다. 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후 이들은 단 한 번도 폭풍을 만나지 않았다. 바다는 너무나 고요하고 잔잔했다.인류 최초 세계 일주 항해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은 이.. 2024.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