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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117

[스페인] 아메리카 정복기: 아즈텍 문명의 비극 세 번째 이야기 아스텍 비극 세 번째 1519년 11월 8일, 아스텍 국왕 몬테주마가 직접 코르테스를 맞았다. 그의 뒤에는 1,000여 명의 신하들이 자신의 국왕과 스페인 정복자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었다. 몬테주마는 그때야 코르테스와 그의 신하들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몬테주마는 일단 코르테스 일행에게 화려한 궁전의 일부를 내주고 귀빈으로 대접했다. 코르테스 일행은 우연히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방 벽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문의 윤곽을 발견했다. 그 벽 문을 깨고 들어가니 방 안 가득 황금 장식품들이 쌓여 있었다. 이것은 모두 국왕의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이었다. 코르테스 일행은 황금을 보자 피가 끓기 시작했다. 몬테주마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코르테스는 아스텍의 군사들이 해안에 남아 있던.. 2024. 5. 19.
[스페인] 아메리카 정복기: 아즈텍 문명의 비극 첫 번째 이야기 황금의 땅 아메리카 1501년, 이탈리아 항해사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남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2,400마일을 항해했다. 그는 이곳이 섬이 아니라 거대한 대륙임을 밝혀냈다. 독일의 지리학자 발드제뮐러는 1507년 이 대륙에 아메리고의 이름을 붙여 책자를 발행했다. 이때부터 신대륙은 '아메리카'라 불리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진출해 있는 동방의 나라들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 데 비해 스페인이 발견한 신대륙은 1520년까지만 해도 경제적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탐험은 계속되었다. 1520년대 이후 스페인의 유명한 식민지 개척자 코르테스와 피사로가 등장했다. 아메리카의 광활한 대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의 새로운 영토가 되었다.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후 유럽으로 돌아갔던 콜럼버스의 함대는 다시 카리브해로 .. 2024. 5. 17.
[포르투갈] 콜럼버스와 포르투갈의 주앙 2세 신대륙 발견과 동방 항로 개척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포르투갈의 동방 항로 개척은 유럽과 세계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항해와 개척으로 인해 사람들이 온전한 세계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진정한 세계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위대한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세계 모든 대륙이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이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역과 문화 교류도 증가했다.주앙 2세와 인도 항로 콜럼버스의 1차 항해 성공 소식을 가장 처음 접한 왕은 스페인의 여왕과 국왕이 아니었다. 처음 콜럼버스의 요구를 거절했던 포르투갈의 주앙 2세였다. 귀항 중이던 콜럼버스는 서풍 무역대에서 태풍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포르투갈 항구에 기착해야 했.. 2024. 5. 10.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포르투갈, 틀에 갇힌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유럽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이슬람 문명과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이들은 유럽 외에도 아프리카 북부 및 아시아에 이르는 무역 항로에 대한 정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포르투갈이 항해 대발견에 나서게 된 주요 요인이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비유럽 문명, 특히 아라비아의 과학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라비아 과학은 특히 천문학과 수리학에서 유럽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럽을 벗어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지.. 2024.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