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117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왕자이자 그리스 기사단장이었던 엔리케 포르투갈이 최초의 해양 탐험 국가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처음 항해를 국가 차원에서 계획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켰다. 따라서 포르투갈의 항해 대발견은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의 200여 년 항해 노하우는 철저한 계획과 체계 아래 조직적으로 재정비되어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포르투갈의 아프리카(세우타) 점령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1415년 세우타 점령을 포르투갈 해외 영토 확장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북서 아프리카의 도시 세우타는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가 이끄는 군대에 함락당했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으로부터 세우타를 빼앗아 주앙 1세의 위엄을 드높이고 더.. 2024. 5. 4. 대항해시대의 서막 : 포르투갈과 스페인, 세계를 양분하다 세계를 둘로 나눈 자오선, 토르데시야스 조약 토르데시야스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다. 겉보기에는 초라한 작은 도시지만, 이곳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1494년 6월 7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곳에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어이없는 조약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베르데 제도 서쪽으로 2,056킬로미터 떨어진 서경 48~49도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선을 그어 경계선을 그었다. 경계선 서쪽은 스페인이 권리를 독점하고 포르투갈의 해양 원정, 탐사 활동은 경계선 동쪽으로 제한하였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국가 간 영토를 분할한 조약이었다. 두 국가는 이 조약에 .. 2024. 5. 1. [러시아사]#60_스탈린 이후 집권한 흐루쇼프와 20세기 계획 경제 20세기 계획 경제 '계획'이라는 방식이 러시아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이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쯤 생겨난 경제사상 중 하나였다. 대공황을 겪었던 미국도 계획 경제를 실시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 3년 정도뿐이었지만 가격 통제 기관을 두어 경제 분야에서 무정부주의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처럼 경제를 하나의 틀 속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계획'이다. 정부는 경제의 모든 분야까지는 아니더라도 채굴이나 개발과 같은 중요한 분야는 통제하는 게 좋다. 이는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자연 자원은 국민 전체의 소유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해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따라서 스탈린이 이 분야의 개척자인 것은 아니다. 그저 .. 2024. 3. 10. [러시아사]#58_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1943년 2월 2일, 200여 일 동안 꿋꿋하게 버틴 소련의 적군은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소련에서의 전쟁은 물론 세계대전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45년 5월 1일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의 승전고가 울린 날이었다. 이날 예고로프 중사와 칸타리아 중사는 독일의 제국의회 의사당 꼭대기에 붉은 깃발을 꽂았다. 그 하루 전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나치 정권은 와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7일 후 독일은 소련의 주코프 장군에게 투항을 알려왔다. 독일이 패망한 그해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들은 얄타에서 회담을 가졌다. 이는 대국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회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세 개 국가가 전후 처리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이는 .. 2024. 3. 9. 이전 1 ··· 6 7 8 9 10 11 12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