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117 [영국]#8_왕권이 하락되고 귀족의 권한이 향상된 과정 증세 또 증세 존 왕은 잉글랜드에서 차츰 군비를 확대하고 임의로 세수를 늘리는가 하면, 귀족들의 영지를 자기 재산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봉건적 규범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 기록에 따르면, 존 왕은 이때 병역면제세를 16배, 귀족들의 영지상속세를 100배나 올리고 동산에 대한 세금은 배로 늘렸다고 한다. 그는 또 상업세를 신설해 모든 수출입 화물의 가치에 따라 그 15분의 1을 세금으로 물리기도 했다. 교회도 더 이상 성역은 아니었다. 존 왕은 교회에까지 손을 뻗쳐 1209~1211년의 3년 동안 교회 수입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이 2만 8,000파운드에 달했다. 소, 양, 보리의 값도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이것이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인플레이션일 것이다. 이렇듯 갈수록 .. 2024. 6. 20. [영국]#7_실지왕(Lackland) 존, 영국의 왕이 되다 서유럽의 봉건제도 서유럽의 봉건제도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게르만족이 처음 실시한 제도이다. 이는 토지 분봉에 기초하여 권리와 의무 관계를 설정한 일종의 사회, 경제 제도였다. 이 제도를 통해 각 계층의 귀족들에게 토지가 분배됨에 따라 정치권력과 사법권, 정치적 특권 등도 나누어졌다. 즉, 봉건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은 바로 분권과 지방화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유럽 봉건사회에서는 분열과 대립,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로마 제국'처럼 강력한 통일 제국을 만들고자 했던 서유럽의 왕들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유럽 봉건국가들의 공통점은 토지 분봉과 노역을 기반으로 한 등급제 사회이자 장원제 사회라는 것이었다. 영주와 봉신 간에는 계약 관계가 성립되었고, 각기 다른 권리와 의무를 .. 2024. 6. 19. [영국]#4_정복왕 윌리엄 1세 윌리엄, 잉글랜드의 왕이 되다 영국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면서 배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는 오히려 "잉글랜드를 이 손안에 넣었다."라고 큰소리치며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잉글랜드 정복에 얼마나 들뜨고 집착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자들은 보름 동안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이윽고 윌리엄이 이끄는 5,000명의 정예부대와 헤이스팅스의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한 7,000명의 해럴드 측 군사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해럴드가 조직한 방어진이 마치 견고한 석벽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윌리엄의 군대는 하루 종일 화살과 기병대의 공격을 번갈아 퍼붓고도 .. 2024. 6. 16. [영국]#3_1066년, 영국 역사의 변곡점 '왕위쟁탈전' 1066년, 영국의 왕위쟁탈전 기원후 1000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는 통일을 이루고 덴마크의 지배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할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11세기 전반기에 잉글랜드의 왕위는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막강한 세력을 가진 귀족들은 기회만 되면 왕위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각축을 벌였다. 독실한 그리스도교였던 참회왕 에드워드(1003?~1066)는 이런 정치판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애착보다 경건한 신앙심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세속 왕국보다는 하나님의 왕국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1066년, 참회왕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임종 때 웨식스 백작 해럴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고도 하고, 그 훨씬 전에는 자신의 먼 친척인 노르.. 2024. 6. 14. 이전 1 2 3 4 5 6 7 8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