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근대사15 [영국]#30_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 최후의 날 1649년 1월 30일, 영국 국왕 찰스 1세 처형의 날 기록에 따르면 이날은 바람이 가볍게 부는 화창한 날이었다. 수천 명의 런던 시민들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왕의 처형식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화이트홀 궁전 앞 광장에 운집했다. 광장이 바라다보이는 왕실 연회장의 방 안에서는 찰스 1세가 자신의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에는 찰스 스튜어트 혼자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자신이 군주였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따뜻한 겨울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찰스 1세는 아직 어린 두 아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홀로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 2024. 7. 20. [영국]#15_종교개혁 이후 1558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되다 헨리 8세와 영국의 종교개혁 헨리 8세의 교황의 허가 없는 이혼에 대한 보복으로 교황은 헨리 8세를 파문해 버린다. 어제의 동지가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버린 상황이 되었다. 헨리 8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내친김에 국왕이 곧 영국국교회(성공회의 모체)의 최고 수장이라는 수장령을 선포했다. 다분히 희극적이지만, 영국의 종교개혁은 이렇듯 국왕이 이혼 문제로 교권에 도전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는 마치 삼류작가가 쓴 연애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하나님과 성서의 신성한 소명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우스꽝스러운 종교개혁으로 인해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났다. 그가 바로 '유토피아'를 저술한 토머스 모어였다. 모어는 헨리가 로마 교회와 결별하고 국교회의 최고 수장 자리에 오르는 데 반대 .. 2024. 6. 27. [영국]#14_튜더 왕조의 왕권 강화 튜더 왕조의 왕권 강화 웨일스를 정복한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의 수렁에 빠져 10여 년을 허우적대다가 결국 프랑스까지 끌어들이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후계자들은 장장 100년이 넘게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는,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을 남겼다. 1453년에 백년전쟁이 실패로 끝나고, 2년 만에 잉글랜드는 양대 귀족 가문인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간의 내전에 휩싸였다. 이는 '장미전쟁'이라는 낭만적인 이름 때문에 자칫 여자나 애정에 얽힌 전쟁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장미 문장을 사용하는 두 가문이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30년에 걸친 내전 동안 잉글랜드의 왕관은 귀족들의 단두대라고 할 만큼 많은 희생을 치르며 네 명의 머리 위를 전전하게 되었다. 결국.. 2024. 6. 2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