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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가톨릭 부부왕,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하다. 스페인 제국의 시작 그라나다 입성, 800년 만의 국토 수복 역사의 그날 이른 아침, 스페인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 성 밖에 있는 네바다 산에 올랐다. 당시 유럽의 가톨릭 국가 여왕 중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했던 그녀는 하루에 4번씩 목욕을 할 정도로 청결을 중요시했다. 그러한 그녀였지만 2년 전에는 그라나다 성 앞에서 "그라나다를 되찾기 전까지 절대 군복을 벗지 않겠다."라고 맹세했을 정도로 국토 수복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146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가 결혼했다. 3년 후 두 사람은 함께 스페인의 여왕과 국왕으로 등극해 그 유명한 가톨릭 부부 왕이 되었다.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스페인의 통일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8세기부터 당시까지는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점거.. 2024. 5. 8.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세우타 점령과 해외 영토 확장 주앙 2세의 향료 무역 포르투갈은 향료 무역을 하기 위해 항해 대발견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항해 대발견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우선 엔리케 왕자 시기의 무대는 주로 대서양이었다. 엔리케 왕자의 발자취는 베르데 제도에서 아조레스 제도, 마데이라 제도를 거쳐 기니만까지 닿았다. 엔리케 왕자의 발견은 향료와 전혀 무관했다. 그는 그저 베일에 싸여 있던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을 뿐이다. 그러나 주앙 2세에 이르러 드디어 인도양 장악 계획이 세워졌다. 물론, 목적은 향료를 얻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항해 대발견의 두 번째 단계였다. 이 시기에 주앙 2세는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탐험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그 탐험대 중 일부는 희망봉을 지나 인도양을 거쳤고, 1498년, 드디어 다 가마가 인도에 .. 2024. 5. 8.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새로운 향로 무역 루트를 찾으러 동방의 향료가 유럽에 이르는 길 15세기 유럽의 경제 중심지는 지중해였다. 베니스, 제노바, 피렌체의 크고 작은 선박이 지중해와 북해를 넘나들었다. 이들은 동방에서 가져온 각종 사치품을 유럽 각지로 운반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423년 베니스 총독이 자랑한 업적을 살펴보면 당시 베니스는 소형 선박 3,000척, 중형 선박 300척, 대형 전함 45척에 선원 3만 6,000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매년 무역 거래액이 1,000만 두카토에 달했는데, 당시 교황의 시종이 1년에 30 두카토를 받았다고 하니 그 거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베니스 상인을 질투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향료 무역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 향료의 가치는 황금에 견줄 만했다. 유럽인들은 고기를 요리하거.. 2024. 5. 7.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엔리케 왕자, 대양으로 눈을 돌리다 엔리케 왕자의 포르투갈 해양 탐험 12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유럽 변방의 작은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의 단일민족국가였다. 당시 유럽 국가에는 '민족의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했지만 유독 포르투갈은 강한 민족의식을 보여줬다. 14세기말 국경 분쟁에서 포르투갈은 예상과 달리 강대국 스페인을 격파했고, 이후 양국은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당시 포르투갈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물리친 주인공은 포르투갈 국왕인 주앙 1세였다. 훗날 그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의 누이와 결혼해 5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 중 4명이 역사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특히 첫째 아들 두아르테는 포르투갈 왕위를 물려받았고, 셋째 아들 엔리케는 포르투갈 해양 패권 사업의 기초를 다져 항해 대발견의 시조가 되었다. 1415.. 2024. 5. 6.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그리고 중국으로 포르투갈, 틀에 갇힌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유럽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이슬람 문명과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덕분에 이들은 유럽 외에도 아프리카 북부 및 아시아에 이르는 무역 항로에 대한 정보를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포르투갈이 항해 대발견에 나서게 된 주요 요인이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비유럽 문명, 특히 아라비아의 과학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아라비아 과학은 특히 천문학과 수리학에서 유럽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럽을 벗어나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지.. 2024. 5. 5.
[포르투갈] 대항해시대_왕자이자 그리스 기사단장이었던 엔리케 포르투갈이 최초의 해양 탐험 국가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처음 항해를 국가 차원에서 계획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켰다. 따라서 포르투갈의 항해 대발견은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의 200여 년 항해 노하우는 철저한 계획과 체계 아래 조직적으로 재정비되어 탁월한 성과를 이룩했다.포르투갈의 아프리카(세우타) 점령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1415년 세우타 점령을 포르투갈 해외 영토 확장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북서 아프리카의 도시 세우타는 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가 이끄는 군대에 함락당했다. 포르투갈이 세우타를 점령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슬람으로부터 세우타를 빼앗아 주앙 1세의 위엄을 드높이고 더.. 2024. 5. 4.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시대 이전 상황 강대국 식민지 분할의 선례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두 국가가 무력 충돌이 아닌 공동 협력으로 세계를 분할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 조약을 통해 세계를 양분하고 각자의 영토 확장에 주력했는데, 이 조약은 두 나라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물론 양국의 군사 배치까지 명시하는 등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규정했다. 특히 이 조약은 강대국의 식민지 분할에 대한 선례가 되었고, 이러한 세계 분할은 훗날 베를린 조약에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베를린 조약은 유럽 열강이 한 자리에 모여 기존의 식민지는 물론, 미개척 영토까지 서로 나누어 가진 사건으로, 이때 오늘날 세계 지도의 초기 형태가 갖추어졌다. 서구 열강의 영토 확장은 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 2024. 5. 2.
대항해시대의 서막 : 포르투갈과 스페인, 세계를 양분하다 세계를 둘로 나눈 자오선, 토르데시야스 조약 토르데시야스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다. 겉보기에는 초라한 작은 도시지만, 이곳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1494년 6월 7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곳에서 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어이없는 조약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베르데 제도 서쪽으로 2,056킬로미터 떨어진 서경 48~49도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선을 그어 경계선을 그었다. 경계선 서쪽은 스페인이 권리를 독점하고 포르투갈의 해양 원정, 탐사 활동은 경계선 동쪽으로 제한하였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국가 간 영토를 분할한 조약이었다. 두 국가는 이 조약에 .. 2024. 5. 1.
[오사카/교토][2024.02.17] 교토 맛집 추천 '호르몬 치바', 호르몬 코스요리, 재방문 의사 100% 이네 후나야에서 교토로 와서 배가 굉장히 고픈 상태였다. 규카츠, 오코노미야끼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인스타에서 호르몬 치바 글 보고는 바로 여기로 정했다. 교토 찐맛집 호르몬 치바 / 위치, 가격, 웨이팅 가모가와 강변에 위치해 있다. 우리 숙소에서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영업시간은 오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한다. 우리는 8시 넘어서 방문했다. 다행히 우리는 웨이팅에 이름 적을 수 있었다. 코스요리로 직접 구워주는 호르몬 구이여서 행여나 라스트 오더가 일찍 마감되는 건 아닌가 했는데 괜찮았다. 가게 바로 옆에는 '다카세 강'이라는 강이 흘러서 볼만했다. 여름엔 벌레가 창궐하겠군. 근데 강이라기 보단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천 같은 느낌이었다. 이 강을 중심으로 먹자골목 같은 게 조성돼 있었다. .. 2024.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