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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16_'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과 의의 표트르에게 있어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가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이유는 바로 러시아가 발트해를 통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바닷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1703년 11월, 술과 소금을 가득 실은 네덜란드의 상선이 네바 강에 닻을 내렸다. 그 배의 선장은 금화 500개를 상금으로 받았다. 표트르는 네바강에서 가장 먼저 닻을 내리는 외국의 배에게 금화 500개를, 두 번째 배에는 300개를, 그리고 세 번째 배에는 금화 100개를 상금으로 주겠다 공표했었다. 표트르는 러시아와 유럽이 처음으로 직접 경제 교역을 하는 걸 특이한 방식으로 축하하며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음을 상징한다. 표트르는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 최초의 관문인 이곳에 수백 척의 배들이 운집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이곳을 단순한 항구로만 남기고.. 2023. 12. 1.
[러시아사]#15_발트해를 확보하라 : 대북방전쟁 '나르바전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궁전에는 사자의 주둥이를 찢고 있는 삼손의 형상을 한 매우 특별한 동상이 하나 있다. 이 동상은 표트르가 강력한 해군의 힘을 이용해 스웨덴을 물리치고 네바 강변의 땅을 차지했던 위대한 승리를 표현한 것이다. 그곳을 정복한 일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 땅을 손에 넣기 위해 러시아는 수년 동안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패배를 맛보기도 하였는데, 이런 패배는 단념이 아닌 오히려 표트르의 의지를 더 단단히 해주었다. 그러면서 전쟁에 대한 경험치 쌓이면서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배워나갔다. 그는 완전한 승리에 다다를 때까지 몇 번이나 싸움과 패배를 거듭했다. 1700년, 표트르는 북유럽 패권자였던 스웨덴과 나르바 강에서 첫 번째 .. 2023. 11. 30.
[러시아사]#14_세계와바다를 향한 관문: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학] - [러시아사]#13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두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13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두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12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12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러시아사] readmyworld.tistory.com 2003년 5월 27일, 러시아 연방 대통령의 초대를 받은 전 세계 45개 국가의 원수 및 정부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상트페테르부르크 탄생 300주년을 축하했다. 러시아 정부는 자그마치 30억 달러를 들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복원했으며, 이 축제는 5년 전부터 준비되었다. 세계적으로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2023. 11. 27.
[러시아사]#13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두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12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12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라는 낙후된 국가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 readmyworld.tistory.com 1722년, 표트르는 14등급으로 이루어진 관등표를 제정했다. 혈통이나 출생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른 승급 제도를 마련했다. 철저한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인재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덕분에 모스크바 길거리에서 빵을 팔던 멘시코프는 육군 장교로 승진할 수 있었으며, 공작으로 봉.. 2023. 11. 27.
[러시아사]#12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라는 낙후된 국가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첫 군주였다. 이 사실 자체가 러시아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었는지를 반증해 준다. 유학을 간 그는 readmyworld.tistory.com 러시아 개혁이 시작됐다. 채찍을 휘두르던 표트르가 늘 야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럽을 따라가는 데 진심이었기에 늘 맡은 책임을 다하며 남보다 먼저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포수, 선장, 조선소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기술을 배웠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군주가 아니라 배우는 입장으로서 그의 상사를 존경하며 따랐다... 2023. 11. 27.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역사학] -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이번에 다룰 주제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가서 거리를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청동 기사' 동상이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를 기리는 동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E. M readmyworld.tistory.com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라는 낙후된 국가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첫 군주였다. 이 사실 자체가 러시아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었는지를 반증해 준다. 유학을 간 그는 박물관, 대기업 등을 눈으로 관찰하고 조선소에서 가서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항해할 수많은 거대하고, 최첨단의 선박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그들의 쾌적한 생활환경 역시 표트르를 충격에 빠뜨렸다. .. 2023. 11. 26.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역사학] -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앞선 글에서 말했듯, 표트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면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1690 ~ 1718)는그렇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결실도 없었으며, 늘 이 readmyworld.tistory.com 이번에 다룰 주제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가서 거리를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청동 기사' 동상이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를 기리는 동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E. M. 팔코네라는 인물에게 예카테리나 2세가 명령하여 주문 제작한 것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이렇게 함으로써 표트르 대제에 .. 2023. 11. 26.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역사학] -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시킨은 표트르가 채찍으로 개혁에 관한 법령을 썼다고 표현하였고,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프로이센 출신의 마르크스 readmyworld.tistory.com 앞선 글에서 말했듯, 표트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면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1690 ~ 1718)는그렇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결실도 없었으며, 늘 이 핑계 저 핑계 삼아 해야 할 것도 안 하기 일쑤였다. 일생을 정치에 쏟은 표트르에 비해 알렉세이는 공부를 무척 싫어하였는데, 늘 술과 연회에 빠져 살며 술에.. 2023. 11. 24.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역사학] - [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식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유럽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유럽식 옷을 입고, 러시아어가 아닌 유럽의 언어로 소통되는 도시,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readmyworld.tistory.com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시킨은 표트르가 채찍으로 개혁에 관한 법령을 썼다고 표현하였고,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프로이센 출신의 마르크스는 표트르를 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군주로 평가하였다. 두 표현이 시사하는 것처럼, 표트르식 개혁은 순항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지구상에 존재한 대부분의 급진적 개혁이 그렇듯, 따르는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2023.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