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51 [러시아사]#12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라는 낙후된 국가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첫 군주였다. 이 사실 자체가 러시아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었는지를 반증해 준다. 유학을 간 그는 readmyworld.tistory.com 러시아 개혁이 시작됐다. 채찍을 휘두르던 표트르가 늘 야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럽을 따라가는 데 진심이었기에 늘 맡은 책임을 다하며 남보다 먼저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포수, 선장, 조선소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며 기술을 배웠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군주가 아니라 배우는 입장으로서 그의 상사를 존경하며 따랐다... 2023. 11. 27. [러시아사]#11_16~18세기 유럽과 러시아의 격차 [역사학] -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이번에 다룰 주제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가서 거리를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청동 기사' 동상이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를 기리는 동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E. M readmyworld.tistory.com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라는 낙후된 국가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첫 군주였다. 이 사실 자체가 러시아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었는지를 반증해 준다. 유학을 간 그는 박물관, 대기업 등을 눈으로 관찰하고 조선소에서 가서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항해할 수많은 거대하고, 최첨단의 선박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그들의 쾌적한 생활환경 역시 표트르를 충격에 빠뜨렸다. .. 2023. 11. 26. [러시아사]#외전_표트르와 청동기사 [역사학] -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앞선 글에서 말했듯, 표트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면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1690 ~ 1718)는그렇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결실도 없었으며, 늘 이 readmyworld.tistory.com 이번에 다룰 주제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가서 거리를 걷노라면, 만날 수 있는 '청동 기사' 동상이다. 이 동상은 표트르 대제를 기리는 동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였던 E. M. 팔코네라는 인물에게 예카테리나 2세가 명령하여 주문 제작한 것이다. 예카테리나 2세는 이렇게 함으로써 표트르 대제에 .. 2023. 11. 26.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역사학] -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시킨은 표트르가 채찍으로 개혁에 관한 법령을 썼다고 표현하였고,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프로이센 출신의 마르크스 readmyworld.tistory.com 앞선 글에서 말했듯, 표트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면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1690 ~ 1718)는그렇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결실도 없었으며, 늘 이 핑계 저 핑계 삼아 해야 할 것도 안 하기 일쑤였다. 일생을 정치에 쏟은 표트르에 비해 알렉세이는 공부를 무척 싫어하였는데, 늘 술과 연회에 빠져 살며 술에.. 2023. 11. 24.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역사학] - [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식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유럽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유럽식 옷을 입고, 러시아어가 아닌 유럽의 언어로 소통되는 도시,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readmyworld.tistory.com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시킨은 표트르가 채찍으로 개혁에 관한 법령을 썼다고 표현하였고,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프로이센 출신의 마르크스는 표트르를 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군주로 평가하였다. 두 표현이 시사하는 것처럼, 표트르식 개혁은 순항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지구상에 존재한 대부분의 급진적 개혁이 그렇듯, 따르는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2023. 11. 24. [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역사학] -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1689년 7월, 근위대의 공훈을 의심하던 표트르는 원정에서 돌아온 근위대를 접견하려 하지 않았다. 표트르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던 소피아 공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쿠데 readmyworld.tistory.com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식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유럽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유럽식 옷을 입고, 러시아어가 아닌 유럽의 언어로 소통되는 도시,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표트르 대제가 원한 러시아의 모습이 바로 이 도시에 담겨 있었다. 중국의 상하이가 내륙 도시와 다른 모습을 띠듯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확.. 2023. 11. 14.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6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6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첫 번째 이야기 1672년 5월 30일 새벽, 모스크바의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모스크바 시내의 수백 개 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러시아란 국가의 전통으로 따져 봤을 때, 이는 왕자가 탄 readmyworld.tistory.com 1689년 7월, 근위대의 공훈을 의심하던 표트르는 원정에서 돌아온 근위대를 접견하려 하지 않았다. 표트르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던 소피아 공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 8월 7일 밤, 크렘린 궁전 안에는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근위대가 황궁을 포위했다는 소문이 일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거짓이라고.. 2023. 11. 14. [러시아사]#6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5_표트르 1세의 유럽유학 [러시아사]#5_표트르 1세의 유럽유학 17세기 러시아는 위기 상황이었다. 기존에 있던 구시대적 발전 모델들이 이미 힘을 잃은 상태여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1697년 표트르가 유럽으로 1년간 유학 readmyworld.tistory.com 1672년 5월 30일 새벽, 모스크바의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모스크바 시내의 수백 개 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러시아란 국가의 전통으로 따져 봤을 때, 이는 왕자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한껏 기쁨에 들떠 있었다. 이미 자식이 많던 그였지만, 건강한 딸들과는 달리 다섯 명의 아들들은 모두 허약했다... 2023. 11. 14. [러시아사]#5_표트르의 유럽유학 [역사학] - [러시아사]#4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두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4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두 번째 이야기 표트르 1세 즉위 직전의 러시아는 매우 낙후된 수준이었다. 수공업 공장은 몇십 개에 불과하였고, 농노제라는 특성상 농업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러시아 국민의 95%가 농노들이었는데 , 이 readmyworld.tistory.com 17세기 러시아는 위기 상황이었다. 기존에 있던 구시대적 발전 모델들이 이미 힘을 잃은 상태여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1697년 표트르가 유럽으로 1년간 유학을 떠난 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러시아 황제라는 위치는 곧 하느님의 화신과 같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화신.. 2023. 11. 13. 이전 1 ··· 24 25 26 27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