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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8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유럽화 [역사학] -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1689년 7월, 근위대의 공훈을 의심하던 표트르는 원정에서 돌아온 근위대를 접견하려 하지 않았다. 표트르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던 소피아 공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쿠데 readmyworld.tistory.com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식의 도시가 아니다. 이 도시는 유럽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다. 유럽식 옷을 입고, 러시아어가 아닌 유럽의 언어로 소통되는 도시,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도시이며, 표트르 대제가 원한 러시아의 모습이 바로 이 도시에 담겨 있었다. 중국의 상하이가 내륙 도시와 다른 모습을 띠듯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확.. 2023. 11. 14.
[러시아사]#7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두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6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6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첫 번째 이야기 1672년 5월 30일 새벽, 모스크바의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모스크바 시내의 수백 개 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러시아란 국가의 전통으로 따져 봤을 때, 이는 왕자가 탄 readmyworld.tistory.com 1689년 7월, 근위대의 공훈을 의심하던 표트르는 원정에서 돌아온 근위대를 접견하려 하지 않았다. 표트르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던 소피아 공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 8월 7일 밤, 크렘린 궁전 안에는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근위대가 황궁을 포위했다는 소문이 일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거짓이라고.. 2023. 11. 14.
[러시아사]#6_표트르 대제의 집권 과정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5_표트르 1세의 유럽유학 [러시아사]#5_표트르 1세의 유럽유학 17세기 러시아는 위기 상황이었다. 기존에 있던 구시대적 발전 모델들이 이미 힘을 잃은 상태여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1697년 표트르가 유럽으로 1년간 유학 readmyworld.tistory.com 1672년 5월 30일 새벽, 모스크바의 우스펜스키 사원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모스크바 시내의 수백 개 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러시아란 국가의 전통으로 따져 봤을 때, 이는 왕자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한껏 기쁨에 들떠 있었다. 이미 자식이 많던 그였지만, 건강한 딸들과는 달리 다섯 명의 아들들은 모두 허약했다... 2023. 11. 14.
[러시아사]#5_표트르의 유럽유학 [역사학] - [러시아사]#4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두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4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두 번째 이야기 표트르 1세 즉위 직전의 러시아는 매우 낙후된 수준이었다. 수공업 공장은 몇십 개에 불과하였고, 농노제라는 특성상 농업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러시아 국민의 95%가 농노들이었는데 , 이 readmyworld.tistory.com 17세기 러시아는 위기 상황이었다. 기존에 있던 구시대적 발전 모델들이 이미 힘을 잃은 상태여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1697년 표트르가 유럽으로 1년간 유학을 떠난 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러시아 황제라는 위치는 곧 하느님의 화신과 같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화신.. 2023. 11. 13.
[러시아사]#4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두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3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사]#3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첫 번째 이야기 러시아의 유명한 표트르 1세(재위 1682~1725)가 즉위하기 전, 러시아는 이미 영토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였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차단한 폐쇄 국가였다. 시기로 따지면 서유 readmyworld.tistory.com 표트르 1세 즉위 직전의 러시아는 매우 낙후된 수준이었다. 수공업 공장은 몇십 개에 불과하였고, 농노제라는 특성상 농업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러시아 국민의 95%가 농노들이었는데 , 이들은 매우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끼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절반이 넘는 아이들은 한 살 전에 생을 마감하였고, 40세까지 산 .. 2023. 11. 13.
[러시아사]#3_표트르 1세 이전 러시아의 현실 첫 번째 이야기 [역사학] - [러시아사]#2_러시아의 영토확장 [러시아사]#2_러시아의 영토확장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이고, 그곳은 광활한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평원은 얼핏 보면 살기 좋은 굉장히 좋은 단어 같지만, 역사에서는 그렇게 이상적인 단어만은 아니었다. 농사를 짓든 뭘 readmyworld.tistory.com 러시아의 유명한 표트르 1세(재위 1682~1725)가 즉위하기 전, 러시아는 이미 영토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가였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국가와의 교류를 차단한 폐쇄 국가였다. 시기로 따지면 서유럽 국가들은 해양을 통해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을 시기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내륙 국가였고, 그 한계를 제대로 직면하고 있었다. 주변의 바다는 북극해와 태평양의 혹한이었기에 항해할 수 없었다. (우리.. 2023. 11. 12.
[러시아사]#2_러시아의 영토확장 [역사학] - [러시아사]#1_쌍두 독수리 [러시아사]#1_쌍두 독수리 [역사학] -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지리적 readmyworld.tistory.com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이고, 그곳은 광활한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평원은 얼핏 보면 살기 좋은 굉장히 좋은 단어 같지만, 역사에서는 그렇게 이상적인 단어만은 아니었다. 농사를 짓든 뭘 하든 하기 좋은 평원은 침략까지도 하기 좋은 터였던 것이다. 그러니 모스크바 공국을 필두로 만들어진 '러시아'라는 국가는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해 주변 영토를 확장하는 길을 택한다. 여기에 대항해 시대의 후발 주자라는.. 2023. 11. 11.
[러시아사]#1_쌍두 독수리 [역사학] -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지리적 특성이 이러한 만큼 러시아에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지게 된다. 러시아의 readmyworld.tistory.com 앞의 글에서처럼 비잔틴의 공주였던 소피아는 쌍두 독수리 문장을 몸에 두르고 신부가 되었다. 이만큼 쌍두 독수리는 기독교계에서는 상징적인 문장이다. 아직도 러시아의 국장에는 쌍두 독수리가 새겨 있을 만큼 러시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국장을 보면, 독수리의 발톱에는 각각 금빛 구슬과 지팡이가 물려 있다. 방패 한가운데에는 은빛 갑옷에 푸른 망토를 두른 채 .. 2023. 11. 9.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지리적 특성이 이러한 만큼 러시아에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지게 된다. 러시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먼저 서양 국가에 관심을 드러낸 사람은 10세기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러시아는 다신교를 믿고 있었는데, 비잔틴에서 동방정교를 받아들인 그는 키예프의 시민들에게 드네프르 강에서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 최초로 서양과의 접촉을 시도한 것이면서도 유럽 문명과 직접적인 관계를 만든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서양과 긴밀히 연결되는 듯했으나, 13세기 동쪽에서 말을 탄 몽골족들이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13세기부터 2세기 동안, 몽골은 러시아를 점령했고.. 2023.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