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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28_예카테리나, 표트르의 공통적 면모와 농노제 예카테리나와 표트르의 공통점과 차이점 1720년대~30년대, 러시아는 발전을 계속하기는 했지만, 발전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여러 분야에 많은 장애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때 예카테리나 2세가 표트르의 대업을 계승했다.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 연안의 영토를 손에 넣는 임무를 완성했다면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가 이루지 못했던 두 번째 문제인 흑해를 러시아의 영역권으로 만드는 임무를 완수했다. 예카테리나는 크림반도에서 대립 구도를 이루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일에 예카테리나는 적지 않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 한편으로 여제는 국가 질서를 강화하는 데도 노력했다. 귀족 계층에 힘을 싣고, 군대의 힘을 강화했으며, 산업과 경제, 문화의 발전을 추진해 나간 것이다. 그녀는 표트르 대제의.. 2024. 1. 30.
[일본 근현대사]#59(마무리)_어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고백, '애매한 일본과 나' 오에 겐자부로의 고백 수상 소감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말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그 연설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매우 애매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난 26년 전 이 자리에 섰던 동포보다도 71년 전 수상자인 아일랜드의 대시인 예이츠에게 더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파괴적이고 맹목적인 신앙 속에서 인류의 지혜를 수호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과 철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자엔지니어링 학과 자동차 생산 공정학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우리나라의 문명을 위해 예이츠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파괴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이 우리나라는 물론 주변 국가 사람들의 이성을 짓밟았다. 나는 바로 이러한 역사를 가진 국가의 국민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국의 역사로 인해 고통스러운 .. 2024. 1. 30.
[일본 근현대사]#58_정치 선진국은 될 수 없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정치 대국을 향하여 1983년 1월 24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국회 시정 연설에서 유명한 '전후 정치 총결산'을 제시하고, "일본이 전후 역사상 중대한 전환점에 놓였다.", "과거의 기본 제도와 구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재인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라고 천명했다. 그는 또 고향인 군마현에서 열린 연설회에서도 "앞으로 세계 정치에서 일본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경제 대국으로서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정치 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984년 7월, 가루이자와에서 열린 자민당 세미나에서도 "21세기를 대비해 과거 의견이 분분했거나, 계속 회피해 오던 문제에 대해 과감히 논의하고, 통일적인 견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본이 정정당당하게 세계 무대로 진출하여.. 2024. 1. 29.
[일본 근현대사]#57_세계 2위의 경제 대국, 그 거품이 터지다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되다 이케다 내각이 집권하던 1963년, 일본의 GDP는 676억 달러로 같은 시기 미국의 11.4퍼센트, 서독의 70퍼센트, 영국의 78퍼센트에 달했으며, 1966년까지 실질적인 경제 성장률이 13퍼센트를 기록해 일본은 전체 GNP 규모가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했다. 메이지 유신을 실시한 지 100년째 되던 1968년, 일본의 GNP가 서독을 앞질러 1위인 미국의 바로 뒤를 잇는 2위로 올라섰다. 당시 일본의 국민 소득은 여전히 세계 20위에 머물러 일본인들의 생활이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의 국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지만, 주요 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매우 강했다. 일본 경제는 국민 경제의 활력과 고성장률, 낮은 실업률, 안정된 물가를 무기.. 2024. 1. 29.
[일본 근현대사]#56_1950-60년대 도쿄 올림픽, 베트남 전쟁 특수를 맞이하다 도로 건설 분야에서는 나고야-고베 간 고속도로가 전면 개통되었고, 승객 및 화물 육상 운송이 빠르게 보급되었다. 항공 분야에서도 지방 항로가 개설되었으며 해외 항로 역시 점점 증가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국내선과 국제선에 제트기화가 실현되었다. 일본의 산업 구조에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중화학 공업의 국제 경쟁력은 시간이 갈수록 향상되었다. 일본의 철강 생산량이 서독을 초월해 세계 3위로 올라섰으며, 자동차 생산량도 미국, 영국, 서독의 뒤를 이어 세계 4위까지 올라갔다. 1963년 중화학 공업이 공업 고정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퍼센트에 달했고, 수출 비율은 1965년에 62퍼센트까지 증가했다. 세계 선진 수준의 최신 설비를 도입한 후 일본은 경제 고속 성장에 부응할 수 있는 중화학 공.. 2024. 1. 28.
[일본 근현대사]#55_국민 소득 배증 계획, 신칸센의 등장과 소비 인식 향상 국민 소득 배증 계획 1950년대 말, 도쿄의 한 식당에서 이케다 하야토와 몇몇 학자들이 정기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은 이케다 하야토의 싱크탱크인 '고치카이'의 주 1회 정기모임이었다.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 경제 정책을 주도해 온 주요 경제 관료로 요시다 시게루 내각에서 대장성을 주관하며 통산상과 경제심의청 장관을 역임했다. 바로 이때, 젊은 경제 전문가인 시모무라 오사무의 주장이 이케다 하야토의 관심을 끈 것이다. 1950년대 중반, 아직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시모무라 오사무는 일본 경제의 두 자릿수 성장을 예측했다. 이케다의 경제 자문인 다무라 빈고는 그를 이케다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정부 계획안에 명시할 숫자를 둘러싸고 시모무라와 다무라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시모무라는 11퍼.. 2024. 1. 27.
[일본 근현대사]#54_한국전쟁과 샌프란시스코 조약 자동차 공업도 정부의 특별 지원 대상 산업이었다. 1949년,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자동차 생산 대수 제한 조치를 폐지했다. 당시 일본의 자동차 생산량은 연간 3만 대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그 후 닛산, 이스즈, 도요타, 히노 등 자동차 생산업체들이 거액을 투자해 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해 향후 자동차 제조업의 현대화에 기초를 다진다. 1호기는 수입하고, 2호기 국산으로 일본의 합리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기술 도입 방식이다. 일본은 거의 모든 기계 공업에 훗날 '1호기 수입, 2호기 국산'이라고 불린 방식이 적용되었다. 일본은 이 방식을 통해 국제적인 선진 기술을 최단 시간에 도입하고 개선해 외국 제품과 대등한 수준의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국제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산업의 성.. 2024. 1. 27.
[일본 근현대사]#53_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일본 경제의 도약 일본, 한국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리다 1952년, 일본의 외환 보유고는 3년 전에 비해 5배나 증가했으며, 특수로 인한 수입이 수출로 벌어들인 전체 외화 가운데 63퍼센트를 차지했다. 당시 일본에 '실 사(絲)' 변과 '쇠 금(金)' 변이 이름에 들어간 업종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정도로 섬유 방직 산업과 금속 산업의 수주량은 전쟁 이전보다 평균 4~5배나 증가했다. 2년 후, 특수 경제에 힘입어 일본의 주요 경제 지표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었으며, 이는 전후 경제 회복이 거의 끝나감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소비와 투자 붐은 2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미국 원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수 경제만으론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실현하기에는 여전히 무리인 상황이었다. 1.. 2024. 1. 26.
[일본 근현대사]#52_패전 후, 일본은 어떻게 경제를 회복하였는가? 일본의 전후 개혁은 자산 계급의 정치와 경제 체제를 새롭게 수립했고, 현대적인 변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일본 경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속하게 발전해 세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성공했다. 빠르게 회복한 일본 경제 1946년 12월 10일, 도쿄 대학 교수이자 요시다 시게루 내각의 석탄 위원회 위원장인 아리사와 히로미는 '일본 경제의 패국을 살리는 길'이라는 글에서 "기초 원료인 석탄 생산에 모든 경제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지렛대로 삼아 생활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라고 했다. 당시 일본이 전후에 직면한 위기는 경제 붕괴였다. 실업자가 전체 노동 인구의 20퍼센트인 600만 명에 달했다.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심지어는 당시 일본 대기업 경.. 2024. 1. 25.